책소개
≪샌드크리크로부터≫는 기본적으로 샌드크리크 학살이라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극의 역사를 성찰하는 하나의 서사시다. 맨 앞의 서시, 그리고 맨 뒤의 후시와 함께 본문 42개의 시가 유기적으로 얽혀 하나의 시를 이루는 동시에 각 시가 저마다의 독특한 구조와 완성된 의미, 다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시 앞에 붙은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서주 또는 도입부는 그 시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다. 이 샌드크리크 학살이라는 큰 서사에는 오티즈의 개인적인 경험과 민족으로서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역사,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네이티브들을 식민화했는지에 대한 서사가 구전 전통의 기법을 통해 중첩되어 있다. ‘이야기꾼’인 화자는 이 세 가지의 서사를 시공을 초월하는 목소리로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구전 전통을 바탕으로 한 오티즈의 역사에 대한 접근법은 주류 역사에 대한 강력한 도전과 비판으로 이어진다. ≪샌드크리크로부터≫의 목적은 ‘미국인 인디언(American Indian)’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대한 지적 이해를 추구하는 역사 ‘다시 이야기하기’다. 오티즈에게 구전 전통을 통한 역사 ‘다시 이야기하기’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행위다. 이 지적 이해와 생존을 위해서 시인은 19세기 미국의 서부 확장은 백인과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백인에게 그것은 개척 또는 프론티어 정신의 발현이자, ‘미국’이라는 나라의 발전과, 영광과, 미래를 상징하는 ‘명백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네이티브에게 백인의 영광은 자신의 땅과 삶의 터전, 그리고 그에 기초한 문화를 파괴하고 말살하는 결과를 낳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오티즈는 이 ‘명백한 운명’이라는 백인 이데올로기를 “그것은 경제적인 목적에 의해 수행된 범국가적인 탐사였다. 유럽은 천연자원에 굶주려 있었고, 아메리카는 삼림과 강과 토지가 풍부했다”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한다.
19세기 미국 역사에 대한 작가의 비판은 ≪샌드크리크로부터≫ 전반에서 이따금 나타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은유들을 통해 현대 미국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20세기 중반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해진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100년 전 서부 개척 당시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행했던 간섭과 지배, 위협과 학살의 또 다른 형태이자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특히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1860년대의 샌드크리크 학살과 동일하게 파악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시인의 관점이 결코 미국의 역사에 대한 피해 의식에서 비롯한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폭력적인 역사와 식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네이티브 아메리칸뿐만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향하는 휴머니즘적 시선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시선은 작품 전체에 스며 있는 저항적이고 급진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오티즈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진실한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임을 보여 준다. 시인은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그들의 비극적 과거에 얽매이거나 집착하기보다는, 그 역사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길 원한다. 오티즈는 이 시집에서 첫 시와 마지막 시의 시점, 주제, 그리고 시제를 연결해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를 아픈 과거로부터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200자평
아메리칸 대륙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주인이자 미국 국민임에도 오랫동안 미국 역사에서 배제되어 온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이먼 오티즈는 미국의 흑역사인 샌드크리크 학살을 통해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서, 또한 미국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본다.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할 때 상처는 치유되고 희망이 솟아난다.
지은이
사이먼 J. 오티즈(Simon J. Ortiz)는 1941년 5월 27일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 주 북서쪽에 있는 아코마 푸에블로 부족(Acoma Pueblo)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티즈는 초, 중학교 교육을 아코마 부족에서 받았고, 13세가 되자 뉴멕시코 앨버커키(Albuqerque)의 인디언 기숙사 학교(Indian Boarding School)를 다니게 된다.
오티즈는 196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커 맥기(Ker-McGee)라는 당대 미국에서 가장 큰 우라늄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 1년간의 일은 오티즈가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 특히 다른 부족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 히스패닉 계열의 이민 노동자들과 저임금의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과의 동고동락, 그리고 그들이 잠시나마 일으켰던 파업의 경험은 오티즈가 그의 시에 표현하는 저항 정신의 밑바탕이 된다. 이후 1962년 포트루이스라는 콜로라도의 한 작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3년간 미 육군으로 복무했는데, 다른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경우처럼 미군 복무는 그에게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오티즈는 1967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뉴멕시코 대학교에 입학해 영문학도와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초기 습작들이 지닌 가능성을 인정받아 1968년에는 당시 신진 작가들 사이에 명망 있던 아이오와 대학에서 주관하는 여름 국제 작가 프로그램에 장학금을 받고 참가한다. 이를 계기로 신인 작가로서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교류할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던 몇몇 작가들과도 친분을 쌓게 된다. 그 후 뉴멕시코 대학에서 수학하는 동안,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앨버커키를 중심으로 ‘레드 파워(Red Power)’라고 불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인권 운동에 참여한다. 특히 그가 이 시기에 몇몇 네이티브 아메리칸 신문의 편집장으로서 일하며 기고한 글과 시들은 현대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민족주의적 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이후 인권 운동에서 물러난 후 1년 동안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시집, ≪샌드크리크로부터≫의 배경이 된다.
오티즈는 40년의 경력 동안 30권 정도의 다양한 책을 출판했으며, 여기엔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비평집도 포함된다. 데뷔 작품은 1971년의 ≪바람 속에서 벌거벗고(Naked in the Wind)≫인데 당시 네이티브 시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 탓에 군소 출판사에서 작은 책자로 300부만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76년의 ≪비를 향해(Going for the Rain)≫와 1977년의 1977년의 ≪좋은 여행(A Good Journey)≫이 연이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게 된다. 이 두 작품은 네이티브, 특히 그의 고향 아코마 특유의 구전 전통에 나타나는 이야기, 문화, 역사, 그리고 세계관을 현대의 상황에 접목해,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미국 사회에서 직면한 문화적 충돌, 정체성, 그리고 생존과 저항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91년에 그의 주요 시를 총망라한 ≪엮인 돌(Woven Stone)≫을 출판하는데, 이 선집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유럽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최근에는 중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그는 주로 시인으로 인식되지만, 단편 소설도 상당수 썼으며, 1999년에 출판한 ≪달 위의 사람들(Men on the Moon)≫을 포함해 몇몇 단편 소설집과 아동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오티즈는 수상도 많이 했는데, 특히 이 시집 ≪샌드크리크로부터≫는 푸시카트 상(The Pushcart Prize)을 수상했다.
오티즈는 1970년대 후반부터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나바호 부족 대학, 뉴멕시코 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문학과 창작을 가르쳐 왔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자신의 부족 아코마, 또는 다른 부족의 커뮤니티에서 봉사하고 신문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하며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교육과 복지 향상에 힘썼다. 2000년 이후에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 영문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애리조나 주립대학 영문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
옮긴이
김성훈은 2014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미국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탈식민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에서도 같은 분야를 연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2010년 봄, 사이먼 오티즈를 만나 그의 수업을 듣고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박사 논문은 현대 네이티브 아메리칸 시와 저널리즘에 대해 1960∼1970년대 레드 파워 운동(Red Power Movement)이라는 컨텍스트를 바탕으로 썼다. 사이먼 오티즈는 박사 논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다수의 논문을 미국 저널에 출판했으며, 현재 박사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례
서문
한국 독자들에게
서문 1
서문 2
≪샌드크리크로부터≫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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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9
40
41
42
후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억압은 그림자처럼 작용한다. 기억을 흐리고 때로는 심지어 봉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것이 범국가적인 차원의 것일 때, 억압은 악하다.
1969년
0000명의 콜로라도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했다.
1978년
0000명의 콜로라도인들이
고속도로에서 죽었다.
1864년
인디언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기억하라. 밀라이를.
50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은 상원 의원들뿐만 아니었다.
기억하라. 샌드크리크를.